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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일기

코오롱 등산학교 5주차 – 인수봉 졸업등반

by 서이__ 2024. 1. 8.

| 등산학교 5주차

 

 

 

신랑은 내가 큰맘 먹고 사준 바람막이 잠바를 입고 나간 구멍을 내왔고 나는 무릎으로 산을 기어 다니는 통에 피부가 남아나는 일이 없어 급기야 결혼을 앞두고 결혼반지를 끼게 됐다. 선생님은 차라리 재생되는 피부를 다치는 쪽이 낫다며 나를 격려해 주셨는데..

 

 

 

이렇게 시작된 등산학교5주차

 

5주차 5 13()  / 이론 5 14()  / 실기
해외등반
(문성욱)
09:00 ~ 11:00 인수봉 졸업등반
 
 
 
졸업식/17:00 CAC산악문화센터
암벽등반 개론 / 기술
(양유석)
11:00 ~ 14:00
등산의 계획
(원종민)
14:00 ~ 16:00
인수야영장 비박

 

 

“백두대간 출신”이라는 수식어(=놀림거리) 함께 이제 산쟁이 소리 듣나 싶었는데 이곳에서의 나는 이제 겨우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만도 안되었다. 말하자면 아직 닭에서 나왔거나 무정란 수준이랄까.

 

정규반 5주차 과정은 조금 특별한데 북한산 인수야영장에서 1 다음날 인수봉 등반으로 정규과정이 끝난다. 대피소가 아니면 야영이 불법인 국립공원의 특성상 일반인의 야영장 이용은 불가한데 번인가 기회가 있었지만 무산되는 바람에 더욱 설레었다.

 

 

 

 

배낭을 가볍게 가져가자는 취지에서 사식을 먹고 올라갔음에도 여전히 생경한 등반장비 때문인지 야영장까지 가는 길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들고 산에 다닌단 말인가.. 한참 BPL 유행하던 시기 해외 등반에 30kg 메고 다닌다는 글을 읽고 BPL 단념하긴 했지만 정말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북한산 야영 자체도 설레었지만 호석쌤을 졸졸 따라다니며 샘터를 찾고 인수야영장 구석구석 걷는 동안은 어린아이가 것처럼 신이 났다. 다가오는 스승의 깜짝 선물도 드리고 모두가 잠든 새벽 화장실 앞에서 혼자 청승 떠는 수남의 독주도 빼앗아 마시며 청승 방해공작을 펼치며 드디어 대망의 인수봉 등반을 앞두게 되었다.

 

 

 

 

인수봉에서 고독길 다음으로 쉽다는 비둘기길은 하강루트까지 어프로치 후에 등반을 시작한다. 나는 전날 새벽까지 수남의 청승을 방해한 대가로 어프로치 구간에서 번인가 헛구역질이 나왔다.

 

정상부에 닿았을 호석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어제 수남이랑 더했다면서요? 어쩐지 이렇게 가나 했다는 말에 째금 민망하긴 했지만 언제 있을지 모를 인수야영장에서의 밤을 성인이 되어서 자란다고 수가 있나. (?)

 

 

 

 

다행히 오르는 동안 알콜이 땀으로 배출이 됐는지 해장 어프로치가 되어서 같았다. 호석쌤이 선등을 하고 남정언니, 교장선생님, 수남이 오른다. 자일 강태공인 수남이 멀어져 가는 보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나마 믿었던 동철오빠는 막자를 맡고 위로 멀어져 가는 조장님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멜로디가 들리는 같았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

 

 

 

 

비둘기길이 가장 짧은 루트라는 것도 같았는데 피치를 저렇게 높게 끊는 호석쌤이 세상 원망스러웠다. 처음엔 조금 고전했지만 크랙+슬랩 구간이라 조금은 수월하게 1, 2 피치를 올랐는데 트래버스 구간에서 앞서가는 조장님이 번인가 미끄러지는 보니 자신감이 땅끝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고소공포 + 장비를 믿지 못하는 병이 걸려서 극도의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는데 태원쌤이 장비를 믿으라며 순간적으로 어깨를 당겨 강제로 바위에서 손을 떼어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이킹 승하차의 기분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만 세상을 하직하렵니다~~ 심정이었기 때문에 눈물이 핑돌고 목이 메었다.

 

 

 

 

트래버스를 앞두고 오도 가도 못하게 허공에 매달려 있는 신세에 울기까지 하면 집에도 같아서 참았는데 눈물은 나중에 2 수진씨의 눈물범벅 얼굴을 보고 나서야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 올랐다.

 

 

 

 

남정언니가 트래버스에서 팔다리를 쫙쫙 벌려 포즈 취하는 너무 멋있어서 따라 하고 싶었는데 극도의 예민 + 불안감을 추지 못하고 결국 박태원쓰앵님의 부축(?) 받아 트래버스를 지나고 호석쌤이 이쁘게 만들어 놓은 슬링 사다리를 밟아 정상부에 올랐다.

 

여기서 호석쌤 얼굴이 진짜 세상에서 제일 반가웠던 같다. 인수봉 정상은 생각보다 별로였는데(?) 고정로프를 잡고 조금 올라가니 건너편에 백운대도 보이고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매번 백운대에서만 바라보다가 인수봉에서 백운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기분이 이상한 넘어 아예 다른 산에 있는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인수봉에 붙어 있는 사람들은 하는 사람들인가 했더니 이제 내가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동도 잠시 풀숲에서 누군가 서럽게 울며 올라온다. 2 수진씨다. 수진씨를 보며 아영씨도 울고 다른 몇몇이 따라 운다. 눈이 퉁퉁 붓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는 안쓰럽고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가 나도 이내 눈물이 났다. 우리는 이렇게 76 울보 삼인방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곧이어 2 전원이 올라오며 다시 동진이와 재회했다. 같이 손잡고 인수봉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으니 감회가 새롭다. 내가 만난 사람이 동진이라서 다행이다 싶었고 모든 과정에 따로 함께할 있었음에 감사했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태원쌤은 베일을 가져오라고 그랬다며 엄청 아쉬워하셨지만 그런 말씀도 그저 감사했다.

 

 

 

 

상징적인 봉우리라 그런지 다들 인수봉에 올랐을 가슴이 벅차올랐다는데 나는 그저 오늘 등반이 끝났다는 해방감 이상의 감정은 없었던 같다. 그냥 하나의 새로운 봉우리를 올랐다는 느낌 정도랄까(너무 날로 올라가서 그런가..?)

 

오히려 다음, 그다음이 걱정이던 등산학교가 이제 끝났다는 생각과 매주 반갑게 맞이하던 조원들을 없다는 아쉬움. 점차 매운맛으로 변해가던 호석쌤과 양교무님 특유의 까칠함이 적응되어 감에 따라 익숙해져 갔던 것들과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 어색했던 걸까.

 

 

 

 

반전은 인수봉 정상에 섰을 때가 아니라 하강할 때였다. 우리가 올랐던 비둘기길은 하강루트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내려가며 올라왔던 길을 고스란히 다시 보게 된다. 길로 서울등산학교가 올라온다.

 

 

 

언젠가 거벽의 기준이 무어냐 교장선생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보통 하루 안에 없고 며칠에 나누어 가야 하는 벽을 거벽이라 부른다 한다.

 

 

인수봉을 오르는 최단거리의 길은 내게 거벽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뿌옇게 덮인 서울을 봤다. 옆으로 거대한 벽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위로 하나, .

 

인수봉에 붙어 움직이는 빨간 파란 점들을 보며 가지 생각을 했는데 사람들은 겁도 없다 진짜 대단하다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겁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보니 아찔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구나.

 

대단한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